2008.11.13 20:50

1박 2일

조회 수 1123 추천 수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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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낭의 고향을 1박 2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왕복 약 1,000 Km의 긴 거리였습니다. 시골 들판의 한 쪽에서는 추수가 한창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추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황금 들판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뜨겁지 않아 하루에 10시간 정도 운전해서 오가는 먼 길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썸낭의 집은 전형적인 시골의 나무집입니다. 앞마당에서는 대여섯 마리의 개가 몰려다니고 암탉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 병아리들을 날개 밑에 모으고 있었습니다. 뒷마당에는 야자나무, 바나나 나무숲도 있습니다. 수도도 없고 전기도 없지만 불편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생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번 왔을 때는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보니 집 한쪽 벽에 썸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이 사진 액자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걸려 있었습니다. 12학년을 마쳤다는 내용과 함께 졸업 성적이 각 과목마다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성적은 전부 C, D, C, D 였습니다. 그나마 두 과목은 F 로 낙제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부끄러워 보여 주지도 못할 성적인데 액자에 넣어 그것도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벽에 자랑스럽게 전시해 두었습니다.

썸낭을 불러 놓고 성적이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낙제를 많이 했다고 대답하는데 전혀 부끄러운 기색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보여 주는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같이 웃으면서 구경을 하고 말았습니다.

캄보디아의 시골은 교육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곳입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아니면 중학교 정도만 졸업해도 졸업장을 모든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둡니다. 이런 시골에서 비록 낙제는 몇 과목 있지만 12학년을 마쳤다는 것은 자랑거리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몇 등을 했느냐, 평점이 몇 점이냐, 성적이 얼마이냐는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만으로 칭찬과 격려와 자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낙제가 두 과목이나 되고 B도 하나 없이 전부 C, D인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벽에다 걸어 둘 수 있는 여유 있는 그들의 사회가 부러웠습니다.

얼마 전 "식객"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한국에서 언제 상영한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최신 영화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내용이야 다 그렇고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 속에 사라지지 않는 주제는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세상에는 1등을 위한 치열한 경쟁,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존재합니다. 1등은 모든 것을 얻지만 2등은 모든 것을 잃습니다. 생존을 위해 때로는 비열하게, 때로는 치사하게, 때로는 약삭빠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1등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2등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떤 희생과 수고를 치르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1등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집니다.

선교지에서도 1등만을 향한 열심은 여전합니다. 최초의 한인 선교사, 한인 선교사가 지은 제일 큰 교회, 캄보디아 최대의 한인 선교센터, 캄보디아 최고의 수재들만 모은 한인 선교사 학교, 최대.. 최고... 최초.. 최...최...최...

모두가 1등이면 좋겠지만 일등은 단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1등이 아닌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1등이 아니라고 1등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1등이 아닌 그들도 역시 자신의 삶에서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역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만든 어떤 특별한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숫자의 기준에서 볼 때 1등이 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성적표의 F라는 기준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있다는 인정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건강하고 건전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단 한사람의 1등을 위해 1등이 아닌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F로 채워진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내 보이는 썸낭을 보며 기억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아마 썸낭은 나중에 이렇게 간증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F 뿐인 나를 불러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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