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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군 생활을 군종병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포병 대대에는 군종목사님이 없었고 연대에 한분의 목사님이 계셨는데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대대교회를 방문해서 설교를 하셨고 목사님이 오지 못하는 주일과 수요일에는 제가 예배를 인도하곤 했습니다. 가끔 군종목사님이 대대를 방문하면 함께 각 포대를 심방하고 사병들을 만나 상담하며 기도를 하곤 했었습니다.

 

한번은 찰리포대를 심방했는데 사병 중 기혼자가 있었습니다. 입대한지 얼마 안 된 신병이었고 기혼에 아들까지 있는 병사였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니 남겨둔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신병, 기혼자, 임신한 아내, 그야말로 지휘관 입장에서는 문제(?)가 많은 사병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그런 가정환경을 듣더니 의가사 제대를 시켜야겠네!”라고 말을 했습니다. 모든 군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말 한마디 제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병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듯 깜깜함 속에 한줄기의 빛을 보는 표정이었습니다.

 

제대라는 한 마디의 말을 남긴 군종 목사님은 그 뒤로 다른 곳으로 떠나시고 제가 제대할 때까지도 그 사병은 여전히 포대에 남아있었습니다. 군종목사님의 말 한마디에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그 사병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 현섭이 현찬이가 힘들었던 일들 중의 하나가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캄보디아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쉽게 말을 합니다. “또 올게, 연락할게초등학교 저학년 어린 아이, 한국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리움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 깊이 남아있는 아이에게 또 온다는 말과 연락하겠다는 말은 충분히 큰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떠나간 사람들은 연락도 없었고 또 오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가끔 식탁에 앉아서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또 온다고 했는데... 연락한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여학생 하나가 저에게 와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예전에 우리교회를 다녀갔던 분의 외모를 묘사하며 그 분이 언제 다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저도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이 우리교회를 오셨을 때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피자집에 가서 함께 피자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분은 몇 명의 아이들에게 너희들 뭐 가지고 싶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청바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분은 떠났고 아이들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때의 대화를 모두 잊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 아이들은 그 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냅니다. ‘그 때 청바지 사준다고 했는데....’ 사실 청바지를 사준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뭐가 가지고 싶으냐고 물었고 아이들이 청바지라고 대답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 말을 사주겠다는 말로 가슴에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아이들은 캄보디아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정말 순진합니다. 아직 바보상자에 길들여지지도 않았고, 인터넷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비디오 게임도 모릅니다. 간혹 한국 가수 이름이나 연예인 이름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 가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열광적인 팬들도 없습니다. 중학교 아이들이 고무줄 뛰기, 공기놀이, 숨바꼭질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로 알고 있습니다. 공책에 연필로 장미꽃을 그리며 놀고, 비 오는 날, 비를 맞으며 목욕하는 것을 즐깁니다.

 

이런 아이들과 말을 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꿈과 희망을 주는 말은 해야 하지만 헛된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말은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킬 수 없는 빈말이라면 차라리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일 년이 다되어가는 그때의 일을 진지하게 묻는 아이들의 순진한 눈빛을 보며 그 일은 이제 잊어버려라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저도 문제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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