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나고…

by lovecam posted Jun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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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 토요일 오후, 교회 마당에 나갔더니 약 2년 전 교회를 떠난 A가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보며 앉아있길래 교회에서 열어둔 와이파이를 하려고 온 줄 알았습니다. 마침 토요일이라 내일 예배에 나오라고 했더니 웬일로 순순히 “예”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한참을 앉아서 놀다가 돌아갔습니다.

 

A는 초등학생 때부터 오빠와 함께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나오던 아이였습니다. 세례도 받고 주일학교에서 봉사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장학금을 중단하자 온다간다 말도 없이 오빠와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2여년 만에 다시 교회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다음날 주일 아침 예배에 정말 A가 나왔습니다. 마음속으로 앞으로 계속 교회에 나오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A가 할 말이 있다며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무슨일이냐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펑펑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임시로 들어와 살면 안 되겠냐고 했습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 자세히 말을 해보라고 했더니… 언니가 자신을 너무 학대해서 도저히 집에서 지낼 수 없다고 합니다. 이유도 없이 때리고 폭언하고 때로는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답니다. 어제는 집에서 쫓아내며 한 번만 더 집에 들어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냐고 했더니 자기도 모르겠답니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일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 있어서 집안일을 모른다고 합니다. 어제는 어디서 잤느냐고 물었더니 친구 집에서 잤다고 대답하네요. 그러면서 두어 달 후면 언니가 외국에 가사 도우미로 간답니다. 그때까지만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기숙사용으로 준비해 둔 방이 있기는 하지만 창고로 사용해서 교회 물건이 가득 차 있는데 그곳 밖에서는 장소가 없다며 보여 주었더니 자신이 청소하고 지내겠다고 합니다. 그 방에 있던 교회 물품을 다른 방으로 옮기고 우리집에서 사용하지 않던 이불을 하나 내어주며 임시로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한 달 정도 평일엔 직장에 출근하고 주일엔 예배 참석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제 토요일 오전에 A가 머물던 방에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안을 보았더니 그동안 A가 사용하던 모든 물건은 없어졌고 원래 그자리에 있었던 교회 물품이 다시 들어와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전까지 있었던 A가 금요일 오후인지 토요일 아침인지는 몰라도 자기 물건을 모두 챙겨 아마도 다시 집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가면 간다고 말이나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올 땐 울며 도움을 청하더니, 나갈 땐 고맙다는 말은 커녕 온다간다 한마디도 없이 2년 전처럼사라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실망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도 이런 일을 많이 겪다 보니 이젠 그런가 보다 합니다.

 

내일이 주일인데 혹시 예배에 나올지도 모르고,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나중에 약간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것마저 없더라도 그냥 오갈 데 없는 아이를 한 달 재워 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2023.6.10)

 

사족 / 주일 예배에 A가 나왔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