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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euc-kr"> 캄보디아의 사원은 단순한 절 이상입니다. <meta name="author" content="로꾸로툼"> <meta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v6.0">

캄보디아의 사원은 단순한 절 이상입니다. 절에서 태어나서 절에서 살다가 절에서 죽는 것이 캄보디아인의 삶입니다. 아래의 글은 캄보디아인에게 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교육 현실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원의 아이들(Pagoda boys)

 

캄보디아의 교육 수준이 점차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부자집의 아이들과 가난한 집의 아이들의 교육 수준은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프놈펜으로 올라온 지방 출신의 젊은 청소년들은 고등학교나 대학의 학비를 납부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을 정도로 적은 돈을 가지고 상경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숙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놈펜 시내의 여러 사원에 들어갑니다. 이 학생들이 사원에 머무는 동안 불교 교리도 교육을 받게 됩니다. 이런 학생들을 일컬어 “크메잉 왓” 즉 사원의 아이들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캄보디아 사원의 모든 승려들은 바로 이런 “크메잉 왓”을 거쳐 자라난 사람들입니다.

 

사원에서의 살며 교육을 받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크메르 문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수상인 훈쎈을 비롯하여 정부의 관료들이나 공무원들도 역시 “크메잉 왓”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1965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훈쎈은 프놈펜으로 와서 라이체 인드라 데비 중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철도역 근처의 넥아보안 사원에서 “크메잉 왓”으로 살았습니다.

 

“크메잉 왓”은 큰 방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나무로 만든 침대 사이에 책꽃이를 경계로 두고 누워 공부를 합니다. 온 방에는 갖가지 옷들이 어지럽게 걸려있어 마치 큰 세탁소에 온것 처럼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자전거와 모또들이 벽쪽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크메잉 왓”은 승려들과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스스로 밥을 지어 자기 침대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프놈펜 불교연구원의 크메르 문화 교수이며 크메르 전통 문화 연구원인 미쯔 푼 역시 학생 때는 “크메잉 왓”으로 지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런 풍습은 캄보디아에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크메르 구전에, 마을의 아이들이 은둔 생활을 하는 성인(聖人)을 찾아가서 함께 기거하며 교육을 받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점령했을 때, 프랑스는 캄보디아의 교육 발전을 위해 새로운 교육 과정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학생들은 사원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처럼 절에서 먹고 자며 계속 학업을 했어요.”

 

“크메잉 왓”으로 사원에 머무는 동안 학생들은 매일 저녁 한 두시간정도나 주말에 불교 교리를 교육 받습니다.

 

쁘레이 뱅 지방에서 온 16세의 “크메잉 왓” 싼 싸리는 지난 2년 동안 쏨 포빈 사원에서 “크메잉 왓” 생활을 했었고 현재는 싼토목 고등학교 9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그는 사원에서 사는 생활은 아주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힘든 집안 일을 하지 않거든요. 공부만 할 수 있어요. 주간 중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스님들로부터 불교 경전과 교리들을 배웁니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절에서 사는 것이 행복해요.”

 

깜폿에서 온 25세의 쎔 쏙카는 노던 대학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2학년 학생입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 하면서부터 독립 기념탑 근처에 있는 랑카 사원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싼 싸리가 절음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가끔 상한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는 걸요.”

 

그러나 그도 집을 떠나 절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절에서 사는 것이 편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스님들을 제외하면 특별히 간섭하는 사람들이 없거든요. 스님들도 간섭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지요. 아무튼 절에서 살면 돈이 들지 않아요. 공부하는 동안 돈 안들이고 먹고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저는 ‘크메잉 왓’으로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대학도 다닐 수 있고 스님들을 통해 불교 교리와 경전을 배워 저 스스로가 마음의 평정을 찾고 마음을 강하게 할 수 있거든요.”

 

올림픽 스타디움 근처의 쏨포 민 사원 주지인 모하 쏘반 파쵸 콩 나마니는 그의 사원에 현재 80명의 “크메잉 왓”이 머물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중에 75명은 공부하는 학생이고요, 3명은 중이 되려고 공부중인 예비 승려 학생이고 나머지 두명은 지금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래 “크메잉 왓”이었는데 공무원이 되고 나서도 받는 월급이 너무 적어서 도시의 비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계속 절에 머물고 있지요.”

 

“모든 크메잉 왓은 절에서 일정한 봉사를 합니다. 예를들면 나무를 가꾸거나 사원 주변 청소를 하거나 장작을 패거나 밭일들을 돕지요.”

 

캄보디아의 모든 절, 특히 수도인 프놈펜의 사원들은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동안 숙소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습니다. 주지의 말에 따르면 모든 승려들은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사회 윤리나 도덕을 가르칠 강한 책임감과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시골에 있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양육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주지는 “모든 중은 크메잉 왓을 양육하는 부모이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을 전수한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많은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종교없이는 살 수없습니다. 종교적인 믿음이 인간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만약 당신이 고대 크메르 제국의 시대로 갈 수 있다면 조상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십시오. ‘왜 우리 조상들은 그처럼 강인한 마음을 가졌고 도덕적이며 정직한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 대답은 긍정적인 불교 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사원들이 건축된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 기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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