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편지 제 7호(2004년 10월 22일)

by 우리목사님 posted Oct 2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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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신 7:21)

 

 

지난 한 달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 인도함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처음 캄보디아에 도착했을 때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고 계심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집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햇볕이 들지 않는 집은 지하실의 집들이지만 캄보디아의 집들은 지하실도 아닌데 햇볕이 들지 않는 집이 참 많습니다. 한낮에도 전등을 밝히지 않으면 거의 밤과 같이 캄캄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볕을 보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웠는데, 여러 가지 사정들 때문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것이 서툰 상황에서 집을 얻고 이사를 하는 것이 상당히 걱정이 되었지만, 뜻밖에도 너무 좋은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2층이라서 밝고 아늑한 공간을 가진 집입니다. 무엇보다도 집세는 지금 사는 집과 같았지만 훨씬 편리하고 좋아서 마음에 꼭 들었습니다. 아이들도 하늘이 보이고 햇볕이 들어오는 집이란 사실에 너무 들떠 벌써부터 이사 갈 날을 달력을 보며 꼽고 있습니다. 처음의 걱정들이 점점 감사의 제목들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사는 10월 30일 토요일로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짐을 다시 꾸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착해 짐을 푼 지 채 반년도 지나기 전에 다시 짐을 꾸리는 중입니다. 그러나 워낙 짐들이 없어서 이사한다는 기분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캄보디아에 아주 기쁜 소식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캄보디아 장로교 신학교가 개교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파송 받은 장로교 선교사들이 캄보디아 장로교 공의회를 조직하고 신학교를 설립하여 체계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여 지난 10월 5일, 30명의 학생들이 입학하여 개교 예배를 드리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수년 후에 잘 교육받고 훈련받은 목회자들이 이 학교를 통해 배출될 것이고, 캄보디아 복음화에 초석들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10월 마지막 주간부터 호산나센터 3학년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영어로 하다가 크마에로 하다가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그냥 우리말로 해버립니다. 그러면 눈치가 좀 빠른 녀석들은 알아듣고 옆자리 친구에게 크마에로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목이 좀 아프기는 하지만, 의도했던 만큼 수업의 효과는 없지만, 그래도 배우려고 똘망똘망 바라보는 눈이 사랑스럽습니다.


10월에는 캄보디아 명절이 있었습니다. 프춤번(Pochum Ben)이라는 명절로 흔히 망자(亡者)의 날이라고 합니다. 거의 한 주간을 공휴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죽은 조상을 공양하기 위해 절을 방문하게 됩니다. 시내 거리는 마치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의 도심거리처럼 텅 비었고 모든 상가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저희들도 한 주간 잘 쉬었습니다.


11월부터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겨울이 온다고 합니다. 얼마나 추울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밖은 여전히 태양 아래 잠시도 그냥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뜨겁지만 말입니다.


일 년 내내 식지 않는 이곳의 날씨처럼, 늘 변치 않는 사역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온 동역자들의 삶속에는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과 같이 변치 않는 믿음의 삶이 지속되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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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2일


캄보디아에서 김성길정심영 현섭, 현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