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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http-equiv="content-type" content="text/html; charset=euc-kr"> 프놈펜 시내에 영화관이 몇곳됩니다. <meta name="author" content="로꾸로툼"> <meta name="generator" content="Namo WebEditor v6.0">

프놈펜 시내에 영화관이 몇곳됩니다. 캄보디아에서 인기있는 영화의 주제는 뱀입니다. 뱀보다 조금 더 인기 있는 주제는 귀신입니다. 그러니까 캄보디아 영화는 뱀과 귀신이 평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 인기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아세요?.....뱀과 귀신이 함께 나오는 영화입니다.(하하하...이건 농담입니다.) 아무튼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캄보디아 책에 캄보디아의 영화 산업에 대한 글이 있어서 번역해서 올립니다. 캄보디아의 영화 현실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크메르 영화와의 조우

캄보디아 영화 감독인 파이 삼 앙(46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내 인생의 목표는 처음부터 소설가나 영화 감독이었어요. 정치가는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없거든요."

1986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화계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파이는 대중가요의 작사자(대중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공부할 때는 사랑하지마라" -한국 한생들 여기에 밑줄 쫘—악....이건 저의 말입니다-)로, 티비의 프로듀서로, 그리고 영화 제작사인 SSB Production의 대표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파이의 연예계 경력은 깜봉짬 지방 크로 차말의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였다. 당시에 크메르 국립 오페라의 르응 바싹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오페라 단원들의 요청으로 1980부터 82년까지 2년 동안 극단에 남아 그룹 리더 중의 한명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곧 나는 연극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어요. 공부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예술을 완전히 포기하거나 그만둔 것은 아니예요. 제 동생이 젊은 사람이 책만 읽고 있는다고 할 정도로 나는 여전히 소설 읽는 것을 즐겼지요. 그래도 책을 읽었어요. 특히 크메르 루즈 때 죽은 유명한 소설가 싸콘의 책은 60권을 다 읽었어요. 그 책들을 읽으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나도 앞으로 이런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했었지요.

파이의 크메르 문학적 자질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가 7학년(중1) “보파 프놈펜 혹은 프놈펜 장미”라는 첫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는 198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서 프놈펜으로 왔다.

“제가 쓴 소설 보파 프놈펜이라는 소설을 들고 시소왓 고등학교로 가서 문학 선생님인 텍 쏘쿤 선생님께 보여 드렸어요. 선생님은 제 소설을 다른 문학 선생님과 학생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시더니 저에게 문학적인 자질이 충분하다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 때부터 저는 작가로서의 길을 충실히 걷기 시작했지요. 현재 20편의 영화 대본과 3천여 곡의 노래 가사를 지었어요.

파이는 말하기를 “본격적인 활동은 1996년 프놈펜 3티비 방송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약 18개월동안 태국에서 프로듀서와 감독 연수를 받았고 1997년 “꼰 뿌 깽꽁(깽꽁 뱀의 아들)”을 제작했습니다.

최근에 파이는 유명한 영화들을 계속 만들고 있다. “꼰 뿌 깽꽁2(깽꽁 뱀의 딸”, “톰 띠우(크메르판 로미오와 쥴리엣)”, “모라낙 메드라(엄마의 죽음)”, “짜으 꼰 뿌 깽꽁(깽꽁 뱀의 손녀).”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영화들은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영화계에서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도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성공한 영화를 위해서 여러 요인들이 있지요. 충분한 자금, 풍부한 인적 자원, 훌륭한 작가, 재미있는 이야기, 촬영 기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요인은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지요. 그러나 파이는 이런 기술이 있다해도 영화 시장 자체가 너무 좁은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한다.

“캄보디아 영화 산업에 몇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이 있어요. 자본이 부족하고, 영화 기술 자체가 낙후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 관료들과 영화 제작자들 간의 협력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관료들은 예술인들을 아무렇게나 대합니다. 심지어 높은 직위의 관료들에게 영화 제작 검열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삭제된 장면을 부드럽게 연결 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주의 경찰과 같은 기관에서는 배우들의 감성적인 연기를 문제 삼기도 해서 영화 제작사들이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기 일쑤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캄보디아의 영화 시장이 너무 작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영화 제작자가 큰 금액을 투자하여 영화를 만든다해도 수익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돈을 낭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국가의 경제가 좋아지고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 여가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형편이 될 때까지는 투자를 기대하지 어렵습니다. 캄보디아의 영화 산업은 세계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주변의 다른 국가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합니다.”

파이의 요즘 고민은 이제 영화 산업의 세계 시장으로 진출에 도전하는 문제를 두고 딜렘마에 빠져있다.

그는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압사라티비(채널11)에서 한 시간 분량의 프로그램을 제작해야하고, 아내를 위해 치과 개원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입니다. 낭비하면 안되지요. 그래서 아들 둘은 비싼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파이는 자신의 두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의 바쁜 업무 외에도 동료 배우들과 함께 사회 봉사에도 힘쓰고 있다. 영화 “껭꽁 뱀의 딸들” 수익금의 일부를 캄보디아 적십자 활동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아내인 테 리 펑과 함께 캄보디아의 여러 지역과 뉴질랜드, 유럽, 아시아 등을 여행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캄보다아가 좋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정직하거든요...”

“나의 조국을 사랑합니다”

 

저는 캄보디아를 배우기 위해 얼마전 부터 캄보디아를 소개하는 한 잡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캄보디아의 문화와 전통 등을 소개하는 잡지입니다. 격월로 발간되는 잡지인데 간혹 유익한 기사들이 많습니다. 그곳에 나온 기사들을 번역해서 소개해 드릴까합니다. 영어로 된 글들이기 때문에 혹시 번역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린 번역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 아니고 어려운 영어에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